전쟁의 모루 위에서 단련된 기술: 파괴의 필요가 발명을 낳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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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모루 위에서 단련된 기술: 파괴의 필요가 발명을 낳은 역사
전쟁은 가장 잔혹한 연구개발 부서다. 평시에 백 년이 걸릴 일을 전시에는 사 년 만에 끝낸다. 이 문장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글이 다루려는 주제의 핵심이다.
## 절박함이라는 연료
기술은 호기심에서 태어나지만 절박함에서 자란다. 인류가 청동의 합금 비율을 정교하게 조정한 까닭은 더 나은 농기구가 아니라 더 단단한 칼이 필요해서였다. 철기 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히타이트가 철의 제련법을 국가 기밀로 다룬 것은, 그것이 보리를 베는 도구이기 이전에 적의 목을 베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이 패턴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된다. 14세기 유럽에서 화약이 본격적으로 무기화되자 성벽의 형태가 바뀌었다. 중세의 높고 얇은 성벽은 포탄 앞에서 무력했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건축가들은 낮고 두꺼우며 별 모양으로 돌출된 능보(稜堡)를 고안했다.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의 방어 설계도를 그렸다는 사실은 예술가와 군사 기술자가 한 사람일 수 있던 시대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기술사가 윌리엄 맥닐은 『전쟁의 세계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 "무기와 사회 조직은 한 쌍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어느 쪽이 먼저 돌았는지 묻는 일은 종종 무의미하다."
맞물림. 그것이 핵심이다. 전쟁은 기술을 요구하고, 기술은 새로운 전쟁의 형태를 가능케 한다. 닭과 달걀의 문답이 아니라, 두 마리가 함께 자라는 양계장의 풍경에 가깝다.
## 세 개의 사례, 세 개의 층위
### 통조림과 나폴레옹: 보급의 발명
1795년, 프랑스 총재정부는 군대 식량 보존법에 1만 2천 프랑의 상금을 걸었다. 나폴레옹의 원정군은 빵이 곰팡이로 뒤덮이기 전에 전선에 닿아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파리의 제과사 니콜라 아페르는 15년의 실험 끝에 유리병에 음식을 밀봉해 가열하는 방식을 완성했다. 1809년의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발견이 살균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반세기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아페르는 왜 그것이 작동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작동한다는 사실만을 알았다. 통조림은 이후 산업혁명기 도시 노동자의 식탁에 올랐고, 식민지 개척자의 배낭에 실렸으며, 20세기 슈퍼마켓의 진열대를 채웠다. 군대를 먹이려던 기술이 결국 도시를 먹였다.
여기서 첫 번째 층위가 드러난다. **전쟁은 민간이 아직 절박해하지 않는 문제를 먼저 절박하게 만든다.** 평시의 시장은 통조림을 발명할 만큼 다급하지 않았다. 전시의 보급선은 그것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 레이더와 페니실린: 두 번째 세계대전의 두 얼굴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영국이 독일 공군을 막아낸 것은 스피트파이어 전투기의 우수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해안에 늘어선 체인 홈(Chain Home) 레이더망이 적기의 위치를 사전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레이더의 기본 원리는 1930년대에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구되고 있었으나, 이를 국가적 방공망으로 통합해낸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의 압박이었다.
같은 시기 옥스퍼드의 하워드 플로리와 언스트 체인은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에 발견하고도 방치했던 페니실린을 정제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페니실린 대량 생산은 미국이 이를 전쟁 물자로 지정하면서 가속되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연합군 부상병의 감염 사망률은 이전 전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다.

전쟁이 끝난 뒤 두 기술의 행로는 평화로웠다. 레이더는 전자레인지가 되었다. 1945년 레이시언의 엔지니어 퍼시 스펜서가 마그네트론 앞에서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는 것을 발견한 일화는 유명하다. 페니실린은 항생제 시대를 열며 20세기 후반 인류의 평균 수명을 20년 이상 늘린 일등 공신이 되었다.
두 번째 층위는 여기 있다. **전쟁이 만들어낸 기술은 평시에 다른 얼굴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 얼굴들이 모두 자비롭지는 않다.
### 맨해튼과 아르파넷: 그림자의 두 갈래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맨해튼 계획에 투입된 인력은 13만 명, 예산은 당시 화폐로 약 20억 달러였다. 핵분열의 이론적 가능성이 제기된 지 7년 만에 인류는 도시를 한 발로 지울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었다. 같은 핵 기술은 1954년 오브닌스크의 최초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로 이어졌고, 오늘날 전 세계 전력의 약 10퍼센트를 공급한다.
1969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ARPA)이 후원한 네트워크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와 스탠퍼드 연구소를 연결했다. 핵 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분산형 통신망이 본래 목표였다. 이것이 인터넷의 시작이다.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화면 너머의 세계는, 본래 핵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명령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설계된 군사 인프라였던 셈이다.
세 번째 층위가 여기서 드러난다. **전쟁이 낳은 기술은 그 기원의 그림자를 끝내 떨치지 못한다.** 인터넷의 분산성은 자유로운 정보 유통의 토대인 동시에, 어떤 단일 주체도 책임지지 않는 익명성의 근원이다. 원자력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청정 에너지인 동시에,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라는 이름을 갖는다.

## 왜 전쟁은 그토록 효율적인 발명가인가
평시의 기술 발전은 시장이 가격으로 매개한다. 더 싸고 좋은 것을 만들면 팔리고, 팔리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 메커니즘은 점진적이며, 종종 보수적이다. 기존 산업의 저항, 매몰 비용, 소비자의 관성이 혁신을 지연시킨다.
전쟁은 이 모든 매개를 단순화한다. 국가는 무한에 가까운 자원을 한 방향으로 쏟아붓고, 실패의 비용보다 패배의 비용이 훨씬 크다는 단 하나의 계산 위에서 움직인다. 미국의 V-12 해군 대학 프로그램은 1943년 한 해에만 12만 5천 명의 공학도를 양성했다. 평시의 어떤 교육 정책도 이런 속도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
장자는 「인간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 "지극한 사람의 마음 씀은 거울과 같아서, 보내지도 맞이하지도 않으며, 응할 뿐 간직하지 않는다."

거울처럼 응할 뿐인 마음은 평화롭다. 그러나 역사의 발명가들은 거울이 아니었다. 그들은 화로였다. 두려움과 분노와 야망을 연료로 태우는 화로. 거울은 평화 속에서 빛나지만, 화로는 전쟁 속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방해물이 곧 길이 된다"고 적었다. 그가 게르만족과의 전쟁터에서 그 문장을 썼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절박함은 사유의 속도를 바꾼다.
## 반론: 평화도 기술을 낳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 인쇄술은 종교 개혁가의 손에서 자랐고, 증기 기관은 콘월의 광산에서 태어났으며, 트랜지스터는 벨 연구소의 평화로운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전쟁이 없었더라도 인류는 결국 그곳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 반론은 절반만 옳다. 문제는 도달의 여부가 아니라 도달의 속도와 형태다. 페니실린은 전쟁이 없었다면 1960년대에야 대중화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동안 수백만 명이 패혈증으로 죽었을 것이다. 인터넷은 다른 형태로 등장했겠지만, 분산형 패킷 교환이라는 핵심 구조가 그토록 빨리 표준이 되었을지는 미지수다.

전쟁이 기술을 낳는다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전쟁은 기술의 시간표를 압축한다.** 그 압축의 대가가 무엇인지, 우리는 여전히 계산하고 있다.
## 우리가 물려받은 빚
오늘날 GPS, 음성 인식, 자율주행, 드론 기술은 거의 예외 없이 군사 연구에 그 뿌리를 둔다. DARPA는 지금도 미래 기술의 가장 활발한 후원자 중 하나다. 우리는 매일 군사 기술의 민간 파생물 위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죄책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주장은 게으른 위안이다. 모든 도구는 그것이 빚어진 모루의 형태를 기억한다. 인터넷의 익명성, 인공지능의 감시 가능성, 자율 무기의 자동화는 모두 그 모루의 흔적이다.
붓다는 『법구경』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선다"고 적었다. 기술의 시작점에 있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지 않는 일. 그것이 기술을 다루는 자의 첫 번째 윤리다.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그 역도 언제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 닫으며: 모루와 망치
전쟁은 모루였다. 그 위에서 인류의 도구들이 단련되었다. 그러나 모루가 도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도구를 만드는 것은 망치를 쥔 손이다. 그 손이 누구의 손인지, 그 손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묻는 일은 영원히 우리의 몫이다.
기술사를 공부하며 가장 자주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20세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더 가난한 문명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더 천천히 그러나 더 평화롭게 같은 곳에 도달했을까. 답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주제의 무게다.
노자는 『도덕경』 31장에서 말했다.
>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도구이니, 부득이할 때만 쓴다."
부득이함이 만든 도구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 부득이함을 줄이는 일과, 이미 만들어진 도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다시 벼리는 일.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할 때에야 우리는 모루 위에서 단련된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쇠는 식어야 비로소 그 형태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