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戰場)에서 부엌으로: 전쟁이 남긴 기술이 일상을 재편한 방식
작성자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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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에서 부엌으로: 전쟁이 남긴 기술이 일상을 재편한 방식

## 1. 어느 오후, 데워진 초콜릿바 하나
1945년 봄, 매사추세츠의 한 연구실. 레이시온(Raytheon) 소속 엔지니어 퍼시 스펜서는 마그네트론 앞을 지나다 주머니 속 초콜릿바가 녹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옥수수 알갱이를 같은 자리에 놓아보았고, 알갱이는 곧 팝콘이 되었다. 이 일화가 전자레인지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덜 알려진 것은 그 마그네트론의 본래 용도다. 영국이 독일 폭격기를 탐지하기 위해 개발한 공중요격 레이더의 심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적기를 식별하던 진공관은 식어버린 커피를 데우는 가전이 되었다. 1947년 출시된 최초의 상업용 전자레인지 '레이더레인지(Radarange)'는 키 1.8미터, 무게 340킬로그램, 가격은 5,000달러에 육박했다. 가정의 부엌이 아니라 호텔 주방과 원양 정기선에 먼저 자리 잡았고, 가정용으로 내려오기까지는 다시 20여 년이 걸렸다. 기술이 군복을 벗고 앞치마를 두르는 일에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 일화는 단순한 우연담이 아니다. 20세기 산업사의 작동 원리를 압축한 장면에 가깝다. **전쟁은 기술의 가속 페달이고, 평화는 그 기술을 길들이는 시간이다.** 군은 비용과 효율의 제약을 잠시 유예한 채 가능성의 극단을 시험하고, 시장은 그 결과를 안전하고 저렴하게 다듬어 가정의 콘센트에 꽂는다.
## 2. 통조림, 나일론, 페니실린: 19~20세기의 번역사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09년, 나폴레옹은 군대의 식량 부패 문제를 해결할 자에게 12,000프랑의 상금을 내걸었다. 파리의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는 유리병에 음식을 넣고 끓여 밀봉하는 방법을 제출해 이듬해 상금을 받았다. 그의 기법은 곧 영국에서 양철 깡통으로 옮겨졌다. 박테리아의 존재가 파스퇴르에 의해 규명되기 반세기 전, 사람들은 이유를 모른 채 살균에 성공하고 있었다.
통조림은 처음에는 병사의 배낭 안에서 흔들렸다. 크림 전쟁, 미국 남북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깡통은 식량 보급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다 점차 식료품점 진열대로 이동해 도시 노동자의 저녁상에 안착했다. 1937년 호멜이 출시한 분쇄육 통조림 스팸(SPAM)은 2차 대전 중 미군과 연합군에 대량 공급되었고, 전후 한반도와 오키나와, 하와이의 식문화에 깊숙이 남았다. 부대찌개의 계보는 보급창에서 시작된다.

나일론은 1935년 듀폰의 월리스 캐러더스가 합성한 폴리아미드 섬유다.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에서 여성용 스타킹으로 공개되어 폭발적 반응을 얻었으나, 진주만 공습 이후 생산은 전량 군용으로 전환되었다. 낙하산, 항공기 타이어 코드, 모기장, 텐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1945년 가을 매장에 나일론 스타킹이 돌아오자 미국 전역에서 이른바 '나일론 폭동(Nylon Riots)'이 벌어졌다. 한 켤레를 사기 위해 수천 명이 줄을 섰다. 군이 점령했던 분자가 다시 다리로 돌아오는 데는 그런 소동이 필요했다.
페니실린의 대규모 생산도 전쟁의 압력 아래 이루어졌다. 1928년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의 항균 작용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산업적 약품이 된 것은 1940년대 초 영국과 미국의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점에 연합군은 전방에 페니실린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약은 폐렴 환자와 산모, 어린아이에게로 흘러갔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배경에는 백신과 위생뿐 아니라, 야전병원의 압력 솥에서 키워진 곰팡이가 있었다.
## 3. 인터넷, GPS, 디지털 카메라: 냉전이 남긴 기반

20세기 후반, 기술의 군-민 이행은 더 추상적인 영역으로 옮겨간다. 분자에서 비트로, 깡통에서 신호로.
ARPANET은 1969년 미 국방부 산하 ARPA의 후원으로 UCLA, 스탠퍼드, UCSB, 유타대를 연결한 4노드 네트워크에서 출발했다. 통설은 이를 핵전쟁에서도 살아남는 통신망 설계라 말한다. 정확히는 폴 배런이 RAND에서 연구한 분산 패킷 교환 이론이 배경에 있었고, ARPANET 자체는 학술적 자원 공유를 일차 목적으로 했다. 어느 쪽이든 군사적 동기 없이는 그 예산이 집행되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 "네트워크는 검열을 손상(damage)으로 간주하고 우회한다." — 존 길모어, 1993년 타임지 인터뷰
길모어의 이 문장은 인터넷의 군사적 DNA를 가장 정확히 진술한다. 폭격에 끊어진 회선을 우회하도록 설계된 라우팅 원리는, 훗날 권력의 차단을 우회하는 시민의 도구가 되었다. 무기로 태어난 그물이 광장이 된 셈이다.

GPS는 더 직접적이다. 1973년 미 공군이 시작한 NAVSTAR 프로그램은 핵잠수함과 대륙간탄도탄의 정밀 위치 측정을 목적으로 했다. 1983년 KAL 007기 격추 사건 직후, 레이건 행정부는 민간 항공기 보호를 명분으로 민간 개방을 약속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까지 미군은 '선택적 가용성(Selective Availability)'을 통해 민간 신호에 의도적 오차를 주입했다. 이 제한은 2000년 5월 1일 0시를 기해 해제되었고, 다음 날 전 세계 측량사·항공사·택시 회사가 갑자기 10미터 단위의 정밀도를 손에 쥐었다. 오늘 새벽 배달 라이더의 지도는 그날의 결정에 빚지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핵심 부품인 CCD(Charge-Coupled Device)는 1969년 벨 연구소의 보일과 스미스가 고안했고, 1976년 CIA의 정찰위성 KH-11이 본격 도입했다. 필름을 캡슐에 담아 지상으로 떨어뜨리던 시대가 끝나고, 위성이 전기 신호로 지상의 사진을 실시간 송신하기 시작했다. 같은 센서가 작아지고 저렴해지자 30년 뒤 모든 스마트폰의 후면에 박혔다. 첩보 위성과 셀카는 같은 가계도에 속한다.
## 4. 군에서 민으로의 번역, 그 구조

왜 이런 흐름이 반복되는가. '군이 돈을 많이 쓰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정확한 구조는 세 층으로 나뉜다.
첫째, **요구의 극단성**. 군은 평시 시장이 결코 요구하지 않는 성능 수준을 요구한다. 영하 40도에서도 작동하는 트랜지스터, 8,000킬로미터를 비행하며 3미터 오차로 떨어지는 유도장치, 24시간 안에 대량 생산 가능한 항생제. 이 극단성이 기술 곡선을 평시보다 가파르게 끌어올린다.
둘째, **비용 제약의 일시적 정지**. 전쟁은 회계의 논리를 잠시 멈춘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투입된 약 20억 달러(당시 가치)는 어떤 민간 기업도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러나 그 비용으로 만들어진 핵분열 공학은 이후 전력 산업과 의료영상, 식품 살균으로 확산되었다.
셋째, **민간으로의 누수 경로**. 군용 기술은 세 가지 길로 흘러나간다. 퇴역 엔지니어가 창업한 스타트업, 군이 의도적으로 공개한 표준(GPS, 인터넷 프로토콜), 그리고 비밀 해제된 특허다. 미국의 베이돌 법(Bayh-Dole Act, 1980)은 연방 자금으로 개발된 기술의 민간 라이선싱을 제도화해 실리콘밸리 폭발적 성장의 법적 기반이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균형이 필요하다. 모든 기술이 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전기, 자동차, 라디오, 컴퓨터의 기본 개념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민간 발명가와 기업 연구소에서 자랐다. 군은 종종 가속기였지, 늘 시발점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속의 강도가 워낙 컸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만지는 거의 모든 인터페이스에는 군의 손자국이 옅게 남아 있다.
## 5. 반대 방향의 흐름: 민이 군을 길들이는 시대
21세기 들어 이 흐름은 한 방향이 아니게 되었다. 스페이스X는 NASA보다 빠르게 재사용 로켓을 띄웠고,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중국산 DJI 드론이 정찰기로 쓰였다. 상용 클라우드가 군 통신망을 대체하고, 오픈소스 거대언어모델이 정보 분석에 동원된다. 군이 민간 기술을 빌려 쓰는 시대, 이른바 '듀얼 유즈(dual-use)'의 일상화다.
이 역방향 흐름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민간 기술의 속도가 어느 영역에서는 이미 군의 조달 사이클을 추월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기에 평시 시민이 만든 도구가 의도와 무관하게 무기화될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안면 인식, 합성 음성, 자율 비행. 부엌의 도구가 다시 전장으로 향한다.
> "치인사천 막약색(治人事天 莫若嗇)" — 노자, 『도덕경』 59장.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아낌만 한 것이 없다.
기술의 절제(嗇)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마그네트론을 켤 때마다 1940년의 영국 해안 레이더 기지를, 통조림을 열 때마다 나폴레옹 군대의 굶주림을, GPS를 켤 때마다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된 여객기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기억의 가능성을 닫지 않는 것, 그것이 사용자의 윤리다.
## 6. 닫는 글: 도구의 이중 출생
도구는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누군가를 살리거나 죽이기 위해, 또 한 번은 누군가의 저녁을 데우거나 길을 찾기 위해. 첫 번째 출생의 기억을 지운 채 두 번째 출생만을 누리는 일은 가능하지만, 정직하지는 않다.
내가 처음 전자레인지로 즉석밥을 데운 것은 군 복무 중 첫 휴가 때였다. 부대 매점에서 사 온 즉석밥 한 그릇이 1분 30초 만에 김을 내며 회전했다. 그때는 몰랐다. 한 시간 전 받아 적던 GPS 좌표의 신호와, 지금 밥을 데우는 전자기파와, 어쩌면 내일 야간 훈련에서 들여다볼 야시경의 광증폭관이 모두 같은 가계도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부엌과 진지(陣地)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말한다. "도행지이성, 물위지이연(道行之而成, 物謂之而然)." 길은 다녀서 이루어지고, 사물은 불러서 그렇게 된다. 전자레인지를 전자레인지라 부르기 시작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레이더가 아니다. 그러나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다니는 그 길은, 누군가 폭격을 피해 처음 깔아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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