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부엌으로: 전쟁이 설계한 기술이 우리 식탁에 도착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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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에서 부엌으로: 전쟁이 설계한 기술이 우리 식탁에 도착하기까지
1945년경, 레이시언(Raytheon)의 공학자 퍼시 스펜서는 레이더 장비 앞에 서 있다가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은 것을 발견했다. 마그네트론에서 방사된 마이크로파 때문이었다. 그는 곧 옥수수 알갱이를 가져왔다. 알갱이는 튀었다. 다음은 달걀이었고, 달걀은 터졌다. 박물관 명패에 박힌 전자레인지의 기원담이다.
명패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 마그네트론이 본래 무엇을 위해 설계되었는가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어둠 속의 독일 폭격기 편대를 식별하기 위한 장치였다. 야간의 하늘을 가시화하던 파장이 30년 뒤 냉동 라자냐를 데우는 파장으로 번역된 것이다. 이 번역의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부엌이라 부르는 공간이 사실은 군수공장의 후방 전시실에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보급의 논리가 식탁을 설계했다
### 통조림: 나폴레옹의 1만 2천 프랑

1795년 프랑스 총재 정부는 군량 보존법을 공모하며 상금 1만 2천 프랑을 걸었다. 1809년 상금을 거머쥔 사람은 파리의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였다. 유리병에 음식을 넣고 가열한 뒤 밀봉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미생물이라는 개념을 몰랐고, 다만 가열과 차단이 부패를 막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다. 파스퇴르가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은 반세기 뒤의 일이다.
아페르의 유리병은 곧 영국인 피터 듀랜드의 양철통으로 진화했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 평원에서 굶어 죽는 동안, 영국 해군은 통조림 양고기를 먹으며 대서양을 건넜다. 군수의 우위가 보존 기술의 우위와 겹친 것이다.
오늘 슈퍼마켓 진열대의 참치 캔, 옥수수 캔, 토마토 캔은 모두 그 양철통의 직계 후손이다. 우리는 200년 전 보병의 배낭에 들어가던 기술을 자취방의 비상식량으로 소비한다. 보존이라는 단어 안에는 행군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 스팸: 점령군이 남기고 간 단백질
1937년 호멜(Hormel)이 출시한 스팸은 처음엔 평범한 가공육에 불과했다. 그것을 세계사적 사물로 만든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미군은 1억 5천만 파운드 이상의 스팸을 전장에 보급했다. 영국, 소련, 태평양 도서까지, 냉장 시설이 없는 곳이면 어디든 깡통에 든 분홍색 단백질이 도착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스팸은 떠나지 않았다. 한국, 오키나와, 하와이, 필리핀. 미군이 주둔했던 지역의 식문화에 스팸은 토착어처럼 박혔다. 부대찌개의 핵심 재료가 미군 보급창에서 흘러나온 깡통이라는 사실은 한국 현대사의 음식학적 각주에 해당한다. 명절 선물세트로 포장된 노란 박스를 들고 친척집에 가는 풍경은, 따져 보면 70년 전 점령군의 식량 운영이 가정의 의례로 굳어진 결과다.
음식은 정치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 화학과 재료의 우회로
### 테플론: 맨해튼 프로젝트의 부엌행
1938년 듀폰의 로이 플렁킷이 우연히 합성한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 이 물질의 첫 번째 진지한 용도는 요리가 아니었다. 우라늄 농축 공정에 쓰이는 육불화우라늄은 거의 모든 금속을 부식시키는데, 맨해튼 프로젝트는 이 부식성 기체를 다룰 패킹과 밸브 소재가 필요했다. PTFE가 그 요구에 응답했다.

핵폭탄을 위해 개발된 코팅은 1960년대 프랑스의 엔지니어 마크 그레구아르의 손에서 프라이팬에 입혀졌다. 낚싯줄에 PTFE를 코팅하던 남편에게 아내가 "그거 프라이팬에도 발라봐"라고 제안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테팔(Tefal)이다.
오늘 계란 프라이가 팬에 들러붙지 않는 이유는 우라늄 동위원소 분리 공정의 부산물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아침 식사의 미학이 미묘하게 바뀐다.
### 인스턴트커피와 동결건조
분말 커피 자체는 19세기 말에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대량 생산 체제로 진입한 결정적 계기는 1938년 네스카페의 출시, 그리고 곧이어 닥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군은 막대한 양의 인스턴트커피를 전장으로 보냈다. 휴대성, 보존성, 즉시성. 모두 보병의 요구였다.

전후 동결건조 기술이 이 흐름에 합류했다. 동결건조는 본래 혈장과 페니실린을 전선까지 운반하기 위해 정교화된 공정이다. 의약품을 위한 진공 승화 기술이 곧 시리얼의 딸기 토핑과 우주식량으로 옮겨왔다. 등산 배낭의 알파미, 편의점의 동결건조 과일, 캡슐 커피의 분말이 모두 같은 계보를 공유한다.
## 보관과 운반: 차가움의 정치학
### 냉장과 냉동의 군사적 가속
가정용 냉장고는 1920년대에 등장했지만, 전 세계 가정에 보급된 결정적 동력은 전후 미국의 가전 붐이었다. 그 붐을 떠받친 것은 전시에 폭증한 압축기, 절연재, 냉매 기술의 산업적 역량이다. 군용 식량 보존을 위해 확장된 콜드체인은 그대로 슈퍼마켓의 냉동 진열대로 이식되었다.
플라스틱 포장지, 알루미늄 호일, 진공 포장. 이 셋 모두 전시 보급 체계가 요구한 가벼움과 차단성의 산물이다. 우리가 도시락을 싸고, 남은 음식을 랩으로 덮고, 김치를 진공팩에 넣을 때마다 전시 군수 사양서의 항목을 가정에서 재연하고 있는 셈이다.

### 마이크로파의 사후
다시 마이크로파로 돌아오자. 1947년 레이시언이 출시한 첫 전자레인지 '레이다레인지(Radarange)'는 높이 1.8미터, 무게 340킬로그램, 가격 5천 달러였다. 식당과 군함 주방을 위한 산업용 기계였고, 가정용 카운터탑 모델로 축소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오늘 1인 가구의 좁은 부엌에서 가장 자주 작동하는 가전이 바로 이 축소된 레이더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적기를 식별하기 위해 발명된 파장이 즉석밥의 전분을 가열한다. 같은 물리 법칙, 다른 목적. 기술의 중립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약한지 이 한 대의 기계가 증언한다.
## 기술은 번역된 폭력이다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모든 기술이 군사적 기원을 갖는 것은 아니며, 평화로운 발명도 충분히 많지 않은가. 옳다. 도자기, 발효, 빵 굽기. 인간의 부엌은 전쟁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가정에 진입한 가전과 가공식품의 계보를 추적하면, 그 상당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거대한 가속기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전쟁은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산파다. 잉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지만, 출산은 군수의 압력 아래 이루어졌다.
이 사실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부엌을 평화의 공간으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가족, 환대, 돌봄. 그러나 그 공간을 채우는 사물의 절반은 살상과 보급의 논리가 빚어낸 결정체다. 노자는 "병자불상지기(兵者不祥之器)",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도구라 했다. 그러나 그 상서롭지 못한 도구가 곡식을 데우고 단백질을 보존하고 커피를 우려낸다. 장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처럼, 어떤 용도는 본래의 용도가 폐기된 자리에서 비로소 태어난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우주는 변화이며, 인생은 의견이다"라고 적었다. 마그네트론이 적기에서 라자냐로 옮겨가는 데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물리학이 아니라 새로운 의견이었다. 같은 파장, 다른 해석. 기술은 의미의 갈아입기를 통해 살아남는다.
나는 자취를 시작한 첫해, 전자레인지로 즉석국을 데우며 살았다. 5천 원짜리 컵라면과 3분 카레가 식단의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그 기계가 어떤 전쟁의 잔여물인지 알았다면 아침을 다른 방식으로 먹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사물의 계보를 잊을 때 비로소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망각은 기술이 부엌에 정착하기 위한 마지막 공정이다.
오늘 저녁,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통조림 참치를 데우고 전자레인지로 즉석밥을 돌리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1945년의 레이더와 1809년의 양철통과 1938년의 핵 공정을 동시에 작동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엌은 박물관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지 한 번쯤 묻는 일은, 식사를 조금 더 진지하게 만든다.
논어는 "식불염정(食不厭精)", 먹는 일에 정성을 다해 싫증 내지 말라고 했다. 그 정성에는 사물의 내력을 헤아리는 일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